나라의 강역疆域을 71구역으로 나누었으되 적성赤城은 영남 제일의 승지勝地이며, 총림叢林수백여 군
데가 있으나 용문사는 강좌江左에서18) 둘도 없는 강원講園이라네.19) 하늘이 갈무리한 곳이요 땅이 숨겨둔 곳
이니, 기이한 꽃 보배로운 나무는 기원정사祇園精舍와 흡사하고, 옥 같은 골짜기 아름다운 봉우리는 영취산
의 청정한 세계와 닮았다네. 이 때문에 두운법사杜雲法師가 석장錫杖을 세웠던 옛 일이 전해지고, 고
려 태조가 수레를 멈추었던 이적異跡이 기록에 실려 있네. 체세體勢는 감싸이고 막혀서 비록 높은 곳에 올라
조망할 수 있는 조건은 모자라지만, 면국面局은 빼어나고 아름다워 특히 상류의 지점을 차지하였네.
이 자운루慈雲樓를 짓기 시작하던 날, 온 골짜기의 가운데 자리를 점지하였으니, 승운봉承雲峯은 윤장전輪
藏殿을 보호하며 근엄하게 임하여 선령仙靈의 굴택을 진호鎭護하고, 종사鍾社에 잇닿은 화장당華藏堂
은 마주서서 하늘의 맑은 기운을 누각까지 전해준다네. 달 밝은 저녁 등불 깜빡이는 새벽에는 소객騷客이 육시六時의 음악을 듣고, 인간과 천상의 큰스님, 글 잘하는 스님들은 삼매三昧의 글을 짓는다네. 아, 옛날부터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시간은 지나가고 일은 변하여서 뽕밭이 바다 되는 세 상을 여러 차례 보았네. (자운루가) 서리 이슬에 젖고 비바람에 씻겨 이미 지난 건륭乾隆을사乙巳년(1785) 봄에 (중건하는) 아름다운 모임을 겪었고, 바야흐로 이제 동치同治임신壬申년(1872)에 중수重修를 맞이했 다네. 가방화주街坊化主는20) 백 사람 천 사람에게 한량없는 청정한 인연을 맺어주었고, 기강을 세우고 경영 하는 이들은 억만년토록 다함없는 큰 복이 되도록 도모했다네. 이윽고 재물과 힘이 모이자 훌륭한 장인에게 명하여, 모든 일이 순리를 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을 보니, 많은 사람 기뻐하며 구름처럼 모였다네. 포작과 난간, 지도리와 문지방, 점계 등은 새로운 제도로 바꾸어 빛나게 되었으며, 원칙과 기준, 넓고 좁 고 높고 낮음은 옛 모습을 유지하되 일부만 변하였네. 그리하여 비단 노닐며 즐길만한 뛰어난 모습을 갖추 었을 뿐 아니라, 뭇 별들이 북극성을 우러르듯 깃들었네. 이미 이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 보았으니, 어찌 무 지개 같은 들보에 노래를 바치지 않으리. 짤막한 노래 펼쳐 들보 들어올리는 일 도우리라.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부상扶桑에서 해 떠올라 붉은 깃발 같아라 푸른 학가산鶴駕山구름 끝에 솟았는데, 보문정사普門精舍그산안에있다네.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눈 아래 봉우리들 푸른 이내에 잠겼어라.청화산靑華山태조산太祖山겹겹한 곳에, 도리사桃李寺백련사白
蓮寺뛰어난 가람伽藍.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극락암 저편으로 해 기울
려 하누나.
맑은 풍경 한 소리에 스님은 손 모으고, 옥풍玉風이 그치자 푸른
난새 울어예네.
어영차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선암仙巖의 쇠하지 않는 크고도
신령한 힘
아침저녁 언제나 우리 임금 아시리, 산사람이 성역聖域에 살며
경하하는 마음을.
어영차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니, 영실營室은21) 밤마다 별빛을 뿌
리누나
이 누각에 올라서면 표연히 변화하여, 인간 세상 분별심이 녹아
서 스러지네.
어영차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만호萬戶에 바람 불어 맑은 여름
쇄락하네
종소리 범패소리 크고도 분분한데, 임금님 복 축원하는 노래로
바뀔지니.
엎드려 원하옵건대, 상량한 뒤로는 태평성대 변치 않고 불일佛日
은 길이 빛나며, 삼재三災는22) 모두 소멸하고 만겁토록 굳건하며,
하늘에서는 경운景雲과감로甘露가 내리고 땅에서는 지수枝穗와
영지芝가 자라나게 하여지이다.
대청大淸동치同治11년 임신壬申(1872) 4월 28일 오시午時에 도
감都監장희禧∙화릉華楞별좌別座정원正原등이 상량하다.
예천 소백산 용문사 자운루 상량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