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대부 좌산기상시 보문각학사 한림학사 지제고 사자금어대
朝散大夫左散騎常侍寶文閣學士翰林學士知制誥賜紫金魚袋인 신臣
이지명李知命이 왕명을 받들어 서술하다.
해동의 산천은 빼어나게 수려한 곳이 많은데 특히 용문산은 더욱 물상이 뛰어나다. 봉우리들이 구비구비 이어지고 굽이치면서 높아졌다 낮아진다. 삼백여 리의 골짜기가 깊으며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지니 진실로 고인高人과 달사達士들이 머물 수 있는 별천지이다. 옛날 신라의 두운선사杜雲禪師와 범일국사梵日國師가 배를 타고 당나라에서 들어가 법을 전해 받고 돌아왔다. 이어 이 땅을 점쳐 가시와 덤불을 베어 평평하게 하고 처음에 초암을 짓고 오랫동안 정근하였다.
우리 태조께서 정의의 깃발을 들어 세 나라를 통합할 뜻을 가지고 불쌍히 여겨 군사를 일으켰다. 산 아래에 이르러 스님의 이름을 듣고 골짜기에 들어와 찾아뵈었다. 수레를 암자 앞에 세워두고 머리 숙여 예를 표하며 비밀스런 약속을 하였다. 천하를 평정하고 조서를 내려 재물을 모아 기와를 구워 모두 30칸間의 건물을 지어주고 아울러 주현州縣의 조세를 거두어 매년 150석石을 주어 공양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였다.
이후 법을 이은 후손들이 계속하여 주지를 맡아 대사 영련에게 이르렀는데, 영련은 30여 년 주지를 맡은 후에 나이가 많다고 사직하고서 선사 조응祖膺에게 전하였다. 조응 스님은 '이 산문은 (왕실의) 은혜를 받은 초제招提(사찰)인데 낡고 무너진 것 이 오래되어 무릎을 들이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
었고 머무르는 연봉사延鳳寺와는 1천 여 리나 떨어져 있어 오가면서 건물을 짓기 어렵다'고 하고서 문하의 제자 중에 일을 맡아 할 사람으로 대사 자엄資嚴을 택하여 (공사를) 주관하게 하고 벼 3백석을 주었다. 자엄 스님은 을유년(의종 19, 1165)에 명령을 받고 와서 거주한 이래로 조응 스님이 시주한 사재를 바탕으로
하여 도량당道場堂 3칸과 승방, 주방, 창고 93곳에서부터 불반佛盤(불상 받침), 번당幡幢(불전 등에 거는 깃발), 탁자, 향로, 등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부확(솥), 동해童海(놋쇠로 만든 동이), 족관足灌(발 씻는 대야), 분앵(단지)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에 을유년에 힘써 수리하고 마땅히 문도와 법손法孫들이 서로 이어 주석하며 끊어 지지 않도록 하라는 임금님의 명령이 내려왔다.
신묘년(명종 1, 1171)에 음양을 담당하는 관리가 현재 황태자의 태를 묻을 곳으로 사찰 문밖의 왼편 봉우리 꼭대기를 점쳐 정하였다. (이에) 사찰에서 임금님의 장수를 기원하는 법회를 열면서 승려 5명에게 각기 매일 (아침) 죽과 (점심) 밥 두끼를 제공하고 낮에는『금광명경金光明經』을 읽고 밤에는 관음보살을 염송하는 것을 일정한 규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조정의 명령에 의거하여 근처 주현의 없어진 절의 토지 30경頃과 안동부安東府 보주甫州지역 10곳 작은 사찰의 노비들 각2명을 사찰에 소속시켰다. 그리고 근처 지역의 조세 700석을 촌민들에게 나누어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도량에 머무는 승려들의 비용으로 삼게 하였지만 조응 선사는 세월이 오래 지나면 백성들에게 피해가 많아질 것을 염려하여 조정에 아뢰어 이를 그만두게 하였다.
기해년(명종 9, 1179)에 사찰을 짓는 공사가 끝나자 9산문의 학도 5백인을 모아 50일간 담선법회談禪法會를 열고 단속사斷俗寺의 효돈孝惇선사를 초청하여『전등록傳燈』,『 능엄경楞嚴經』,
『인악집仁岳集』, 『설두염송雪竇拈頌』등을 강의하게 하는 것으로 낙성하였는데, 경자년(명종 10, 1180) 정월에 시작하여 임인년(명종 12, 1182)에 다 보았다. 계사년(명종3, 1173)에 나라와 조정에 어지러운 일이 많았을 때에도 대선사(조응)가 발원하여 3만 명의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재齋를 열고 다시 별도로 윤장대
輪藏大두 개와 (이를 안치할) 건물 3칸을 만들고 7일간 법회를 열면서 학자 300인을 모으고 개태사開泰寺의 영치穎緇승통을 초청하여 설법함으로써 낙성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구하였다.
이 절에는 신이한 일이 세 가지 있었다. 처음에 태조께서 두운 스님을 찾아서 산에 들어오려 할 때 골짜기 입구의 바위 아래에서 진짜 용이 나타나 맞이한 것이니 이로 인하여 (산의 이름을) 용문龍門이라고 부르는 것이 첫 번째이다. 처음 기단을 쌓을 때에 홀연히 옛 들보 위에서 무게 16냥兩의 은병銀甁 하나를 얻어 곡식을 사서 일꾼들의 삯에 충당한 것이 두 번째이다. 계미년(의종 17, 1163)에 도량당 남쪽 뜰 가운데에 9층짜리 청석탑靑石塔을 세우고 사리를 안치할 때에 (탑의) 제4층 위에 다섯 색깔 구름이 걸려 있다가 한참 지나서 사라진 것이 세 번째이다.
대선사는 신령하고 기이한 일이 자못 많은 것은 과거의 인연이 있어서 이거나 아니면 황태자의 태를 묻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조정에 청하여 사찰의 이름을 창기사昌期寺로 바꾸었다. 이에 앞서서 보주는 안동부의 관내에 속하였는데 (황태자의) 태를 묻은 인연으로 기양현령관基陽縣令官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대선사 조응은 본래 해주海州사람이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호장戶長보윤甫尹인 유윤惟胤으로 삼한벽상공신 사도 삼중대광三韓壁上功臣司徒三重大匡인 최정헌崔貞獻의 7대손이었다. 14세에 혜조慧照국사의 문하 제자인 선사 영보英甫에게 나아가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을사년(인종 3, 1125)에 조계종 승과에 합격
한 후 일곱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였는데 모두 이름난 사찰들이었다. 계유년(의종 7, 1153)에 삼중대사로 임명되었고, 기묘년(의종 13, 1159)에는 선사로 올랐으며, 다음 해(의종 14, 1160)에는 대선사가 되어 관고官誥한 통을 받고 명봉사鳴鳳寺에 주석하였다. 을해년(의종 9, 1155)에 보제사普濟寺에서 열리는 담선법회에 가려고 서울로 향하였는데, 음죽현陰竹縣에 이르러서 흑석원黑石院이 불타버린 것을 보고 가지고 가던 이불과 자리,은의 중량 9근8냥 어치의 은그릇, 그리고 조租 100석과 은병 한개 등을 모두 현의 아전에게 맡겨 관원館院을 다시 짓게 하였다. 그 후 정해년(의종 21, 1167) 겨울에는 (그곳에서) 콩으로 국과 죽을 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신사년(의종 15, 1161)에 서울의 북쪽 산에 있는 대흥사에 머무를 때에도 재산을 희사하여 건물을 중수하고서 승려들의 모임을 열어 혜조국사가 중국에서 전해온 좌선할 때의 의궤儀軌와 발우를 놓는 법 등을 행함으로써 낙성하였다. 계사년에는 왕명으로 명봉사 총림의 법주法主가 되었고, 을유년(의종 19, 1165)의 금주金州 안국사安國寺에서 열린 50일 담선법회 때에도 법주를 맡았다. 보주의 두천원頭
川院은 동남지방의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요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물이 낡고 풀이 무성하였다. 이에 기해년(명종 9, 1179)에 용문사의 자엄 대사와 함께 목재와 기와를 준비하여 중수하고 매년 겨울과 여름에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계미년(의종17, 1163)과 갑신년(의종 18, 1164) 사이에 남쪽 지역에서 도적들이 크게 일어났을 때에는 1만 명의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재齋를 열어 도적의 어려움을 구하였다. 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청정하고 세속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학식이 넓고 깊으며 높은 도를 닦고 행실이 뛰어나서 총림의 모범이 되고 사람들이 태산이나 북두와 같이 우러러 보았다. 머무르는 곳마다 학자들이 숲과 같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잘 가르치고 인도하여 조금도 싫증을 내는 기색이 없었으며, 노년에 이르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법을 전하고 사람을 인도하여 나라에 복과 이익을 가져온 것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자엄은 훌륭한 선비였는데, 스승인 조응은 직접 가르치면서 마치 양아들과 같이 하였다. 명성을 이루게 되자 명리를 추구하고 세속에 골몰하는 것을 싫어하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에 세속의 신발을 벗고 명산을 두루 유람하였다. 이 용문산의 맑고 시원한 곳에 이르러 자신의 성품에 맞음을 즐거워하면서 어려움을 꺼려하지 않고 새롭게 건물을 지었으니 그 애씀 역시 지극하였다.
생각컨대 두운杜雲은 신성한 스님이고, 조응祖膺은 현명하고 덕이 있는 분이다. 만일 성인이 이곳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면 용문산은 승냥이와 호랑이, 여우, 토끼들이 사는 숲이 되었을 것이니, 누가 능히 천안天眼을 가지고서 왕의 기운을 알아보고 초창기에 비밀히 성주聖主(태조를 가리킴)를 도와 어려운 세상을 안정시키고 이름을 천년 후에 전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만일 조응이 옛 것을 수리하고 쓰러진 것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무너진 담장과 깨어진 주춧돌이 풀 속에 묻혀 있었을 것이니 어찌 능히 9산의 승려들이 가사를 입고 석장을 짚고서 물고기 떼처럼 모여들어 아침과 저녁으로 향불을 피우며 나라의 복이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축원할 수 있었겠는가. 오랜 세월이 지나가면 (이 사찰을) 개창하고 중수할 때의 신기한 자취들이 없어지고 전해지지 않게 될까 염려하여 그 시말을 두루 적어서 후세에 보인다.
대정大定 25년 을사년(명종 15, 1185) 4월 일에 보제사普濟寺주지인 성인선사性印禪師 신臣 연의淵懿가 왕명을 받들어 쓰고, 문인인 금화今華 다정사茶井寺 주지인 중대사 충묵沖默과 (용문사) 주지인 중대사 사수思秀 등이 비석을 세우며, 입선入選해석이 글씨를 새기다.
중수용문사기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