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戊辰년(1688) 늦겨울[季冬: 음력 12월] 수경守庚하는 일로 용문사에 올라갔더니 주지住持가 절의 고적古蹟한 부部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는데, 바로 고려 이학사李學士가 찬술한 비문이었다. 펼쳐서 살펴보니 두운杜雲∙조응祖膺∙자엄資嚴 세분 대사大師의 절을 창건하고 중수한 자취가 또렷하여 마치 어제 일 같았다.
주지가 말하길 “아, 이 절의 창건은 오래되었습니다. 중간의 흥
하고 쇠함은 그 변화가 얼마인지 알 수 없건만 그러한 사적事蹟을 기록한 것은 이학사 이후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중수한
것은 무슨 집이고 새로 창건한 건물은 어느 것이며, 아무개가 세운 것이고 어느 스님이 주관한 일이라는 사실은 끝내 스러져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스러져 전하지 않으려는데도 어째서 글로 기록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하였다. 나는 (글솜씨가) 거칠고
졸렬하다고 사양하였으나 스님의 요청이 강해 마침내 절 내력의
전말顚末을 자세히 물었더니 주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또한 여러 장로長老들에게 들은 것입니다만, 지난날의 이른
바 아흔 세곳이 모두 무너지고 스러져도 고치지 않고 망가지고
재가 되어도 수리하지 않아서 우뚝한 윤장대輪藏大 한 채마저도
장차 기울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거주하던 스님네가 탄식하고 지나가던 납자衲子들도 서글퍼하여 만력萬曆 무신戊申년(1608)에 호남湖南의 승려인 혜명慧明스님이 옛 규모보다 늘려
서 제하당霽霞堂을 중수하였답니다. 숭정崇禎 병자丙子년(1636)에는 이 절의 스님인 학문學文이 적묵당寂默堂을 지었으며, 그 남쪽에 있는 범종루泛鍾樓는 그 이듬해 두인杜印스님이
이룩한 것이라고 합니다. 두 건물, 즉 제하당과 적묵당의 북쪽에는 광명전光明殿을 세워서 범종루와 통하게 하였는데, 나는 듯
나래를 편 듯하며 초라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았으니, 일을 주관한 이는 광인廣印스님이고 때는 기축己丑년(1649)이었답니다. 지장전地藏殿은 그 서쪽에 있으며 영칙靈則스님이 만들었고, 응향각凝香閣은 그 동쪽에 있는데 도오道悟스님이 이루었다
합니다. 영준靈俊스님이 원통전圓通殿을, 행변幸스님이 삽삼전을, 학문學文스님이 응진전應眞殿을, 그리고 혜일惠日스님이 미타전彌陀殿을 이룩하였는데, 모두 근래에 수리하거나
지은 것으로서 이루어진 연월일은 그 기문記文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하당의 남쪽에 해징海澄∙취성就性 두 스님이 삼강실三綱室을
설립하였고, 동북쪽으로 수십보 떨어진 곳에 태상太祥∙각철覺哲 두 스님이 만월당滿月堂을 이룩하였으니, 때는 경술庚戌년(1670)이었답니다. 의섬義暹∙의탄義坦스님이 서까래와 기와를
손보아 대장전大藏殿을 수리한 것도 이 해에 이루어진 일이라
합니다. 이에 여러 스님들이 다 함께 분발하고 대중들이 서로 다투다시피 힘을 기울여서 신유辛酉년(1681)에 만세루萬歲樓를
지었으니, 법률法律∙희인希印∙대규大奎∙밀언密彦∙법견法堅스님 등이 그 일을 하였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시왕전十王殿을 만들었는데, 두관斗寬∙법청法淸∙도해道海∙인경印瓊∙정률精律∙
형영스님 등이 힘을 모았습니다. 또 그 이듬해에는 금당金堂을 세우고, 다시 그 이듬해에는 축수전祝壽殿을 이룩하였으니,
처영處英∙심보心寶∙여식∙삼언三彦∙설견雪堅∙삼인三忍∙해장海藏∙대기大機∙홍택洪澤스님 등이 그 일을 담당하였습니
다. 시왕상十王像과 금당의 판불版佛을 만드는 일은 실로 신경
대사神鏡大師의 힘에 의지한 것으로, 절 스님네의 대부분이 그의 공덕에 탄복하여 축수전 서쪽에 별도로 감실龕室 하나를 마련하여 장차 대사의 진영眞影을 안치하려고 합니다.
청심당淸心堂은 시왕전 앞에 있으며, 명월료明月寮는 적묵당의
오른쪽에 있으니, 이들은 주지 성총性聰스님이 병인丙寅년(1686)에 지은 것입니다. 이 해 여름에 성인筬印스님이 서울에서 공신公信스님이 보낸 재물을 가지고 왔는데, 성총스님은 전임 주지로서 그 일을 총괄하였습니다. 올 봄에는 범종루 남쪽에
천왕각天王閣을 크게 짓고 좌우에 (사천왕) 소상塑像 4구軀를
세우면서 채 몇 달이 걸리지 않아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처원處源∙삼웅三雄이 재목을 들여 집을 짓고 원선圓善∙공신스님이 천
왕상을 만들고 단청을 한 것입니다. 도량 밖에 따로 암자가 세
군데 있습니다. 서쪽에 있는 것이 서전西殿인데 영칙스님이 세웠으며, 북쪽에 있는 것을 비전碑殿이라 하는데 혜진惠眞스님이
이룩하였습니다. 비전의 아래가 양로암養老庵이니 치능致能 노스님이 머물고 있으며, 그의 문도들인 해월海月∙밀청密淸 등 10여명이 스승이 노년을 보내고 강의하는 곳으로 지은것입니다.
아, 아래위로 80년 사이에 옛 건물을 고치고 새 건물을 세운것이 약 26 군데에 이르니, 비록 조응∙자엄스님이 수리하고 고친
굉장함에는 그 융성함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지난날 무너지고
스러져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을 본다면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또 명년明年을 기약하고 일주문一柱門과 향적전香積殿을 조성하고 있으니, 나중에 오는 이들이 더 크게 만들어 지금보다 더 융성하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또한 무너져도 고치지
않고 쓰러지는데도 수리하지 않아서 가시덤불에 뒤덮이게 되거나 여우와 토끼의 소굴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무릇 세상에는 족히 믿을 만한 것이 있으나, 그것이 사물의 흥함과 망함에는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읊은 율시, 이재 조우인曺友仁이 화운和韻 한 시, 그리고 청풍淸風 정윤목鄭允穆의 고시古詩 한 편篇은 한 지역의 그윽하고 고요한 정경을 그려내었고 천고의 흥망성쇠를 남김없이 엮어내었으니, 참으로 썩지 않는 것은 여기(詩文)에 있지 저기(건물)에 있지 않다
하겠습니다.
내가 위와 같은 주지의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그 사적事蹟을
서술하여 돌려주었다. 주지는 누구인가? 희욱希旭이 그의 법명法名이다.
위의 글은 박세대朴世大 공公이 지은 것이며, 글씨는 늙고 못
난 내가 젊은 시절에 쓴 것이다. 굽어보고 우러러 보는 잠깐
사이에 박공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나도 당시의 붉은 얼굴이
변하여 백발이 되어 (글을) 펴서 살펴보니 감개가 새롭다. 글의 말미에 글 지은 사람의 성명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뒷사람들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 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적어 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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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사적 유용건 
